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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속삭임: 보이지 않는 감정의 떨림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10월 21일
  • 3분 분량

이찌고세연《Whispers of Silence》개인전, 스페이스후암23

스페이스후암23: 갤러리제공
스페이스후암23: 갤러리제공

예술은 종종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시각의 언어로 번역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찌고세연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 섬세한 번역의 현장이다. 우리의 몸속에 흐르는 감정의 파동,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과 같은 호르몬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은 작가의 손을 거쳐 마법처럼 색과 입자의 춤으로 화려하게 드러난다.

스페이스 후암23에서 열리는 작가의 두번째 개인전 'Whispers of Silence (침묵의 속삭임)’은 이러한 작가의 세계를 한층 더 확장한다. 작가의 신작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캔버스 회화의 틀에서 벗어난 벽돌 페인팅 작업을 통해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인간과 비인간, 물질성과 비물질성 등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색으로 나타내는 이찌고세연 작가의 감각적인 세계 속으로 흠뻑 빠져들어보자.

전시를 앞두고 작가가 바라보는 침묵의 속삭임과 그 속에 담긴 감정의 언어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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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Hidden Pulse Spectrum>(숨은 맥박의 스펙트럼)은 Whispers of Imperceptible Vibrations(감지되지 않는 떨림의 속삭임) 이라는 부제가 인상적입니다. 이번 신작은 어떤 계기로 탄생했나요?

     

: 〈Hidden Pulse Spectrum〉(숨은 맥박의 스펙트럼)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떨림’을 시각화하려는 오랜 탐구의 연장선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감지되지 않는 신호, 즉 우리가 느끼지만 언어화할 수 없는 정서적 파장을 다루고자 했어요. 음악의 잔향이나 공기 중의 미세한 전류처럼, 감정은 늘 존재하지만 감지되지 않은 채 흐르죠. 그 미세한 ‘존재의 진동’을 색의 스펙트럼으로 번역한 것이 이번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작가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 속의 울림을 색과 입자로 담아내어 감정의 리듬이 머무는 한 폭의 시각적 풍경을 완성합니다. 호르몬같이 과학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개념을 회화로 표현할 때 특히 중점을 두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 감정이나 호르몬처럼 측정 가능한 과학적 대상을 회화로 옮길 때, 저는 언제나 ‘데이터’보다 감각의 리듬을 우선으로 봅니다. 수치가 아니라, 그 변화의 파동을 시각화하는 거죠. 그래서 회화 안에서는 색보다 밀도, 선보다 호흡, 입자보다 여운이 더 중요해집니다. 결국 화면 속에서 과학은 언어가 아니라, 감정의 리듬을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벽돌에 페인팅 작업을 시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벽돌이라는 새로운(혹은 낯선) 재료를 선택하신 이유와 작업의 의미를 소개한다면?

     

: 벽돌은 ‘건축의 최소 단위’이자 ‘기억의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벽을 세우는 재료이지만, 동시에 시간을 품은 물질이기도 하죠. 이번에는 그 위에 페인팅함으로써 감정의 흔적이 물질에 스며드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물감이 스며든 벽돌은 마치 오래된 감정의 지층처럼 남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감정의 구조물을 구축하는 행위이자, ‘침묵의 벽에 새겨진 신호’를 시각화한 시도였습니다.

     

신작들로만 구성된 「Whispers of Silence」 전시는 어떤 주제를 담고 있나요?

     

: 「Whispers of Silence」 전시는 ‘말해지지 않은 감정의 파장’을 주제로 합니다. 감정은 표현될 때보다, 표현되지 못한 순간에 더 깊이 진동하죠. 그 조용한 울림을 색, 입자, 그리고 물질의 질감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전시는 결국 ‘침묵 속의 대화’를 시각화한 기록입니다.

     

작업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나 정체성을 나타내는 부분이 있나요?

     

: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체성은 감정의 물질화입니다. 감정은 형태가 없지만, 그 흔적은 분명히 남습니다. 저는 그 흔적을 색과 질감, 그리고 물질의 온도로 번역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이 머물렀던 공간의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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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pers of Silence」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와 침묵 속의 미묘한 떨림을 섬세하게 포착해냅니다.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순간이 있었을까요?

     

제 작업의 시작점은 어느 날 느꼈던 ‘설명되지 않는 울림’이었습니다. 그건 음악이 멈춘 뒤 남는 공기의 떨림처럼, 보이지 않는데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의 잔향이었죠. 그때부터 ‘감정의 물리적 실체’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결국 제 작업은 그 ‘잔향’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자, 언어로 닿지 않는 감정의 풍경을 그리는 행위입니다.     

     

‘보이지 않는 진동’과 ‘감정의 스펙트럼’을 회화와 조형으로 풀어냈는데요,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탐구가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탐구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시각뿐 아니라 후각, 촉각, 청각을 통해 감정의 진동을 경험하게 하는 전시를 구상 중이에요. 감정은 단일한 감각이 아니라 복합적 공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다층적인 감각의 연결고리를 예술로 풀어내려 합니다.     

     

라이브 페인팅과 조형 작업 등 단순한 회화의 영역을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매체와 방식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 온거군요. 이러한 실험적 흐름을 이어갈 새로운 도전이나 계획이 있나요?

     

저에게 실험은 늘 ‘감정을 더 명확히 드러내기 위한 형식의 변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재료나 기술에 제한을 두지 않고, 빛, 향, 진동, 그리고 AI까지 감정의 매개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다만 기술 자체가 중심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가진 불완전함과 떨림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될 거예요.

     

관람객들의 주체적 감성을 존중하겠지만, 어떤 관점을 공유하고 싶은가요?

     

관람객들이 제 작업을 통해 자신 안의 미세한 감정의 떨림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설명되기 전에 이미 느껴지는 그 감각…. 그게 바로 인간이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작업은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일종의 감정의 기록장치에 가깝습니다.

     

이찌고 세연 작가는 내면의 세계에서 번져오는 미세한 울림을 섬세하게 포착해 그녀만의 색과 질감으로 다시 호흡한다. 작품 위에 스며든 터치는 감정의 리듬처럼 일렁이며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미세한 떨림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 앞에서 우리는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감정의 결을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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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전시명: 《Whispers of Silence》(침묵의 속삭임)

일시: 2025.10.25.-2025.11.09

장소: Space Huam23(스페이스후암23) 서울 용산구 후암동 236-1

운영시간: 수-일 12pm-6pm(월, 화 휴무)

오시는길: 4호선 숙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도보 7분

주차는 인근 후암 재래시장 공영주차장, 유료주차장 이용 대중교통 권장


글: 김소연 / 인턴 디렉터, 홍익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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