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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지리적 문화도시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6시간 전
  • 2분 분량

예술지리 시리즈 3


문화도시 “광풍”이 대한민국을 휩쓸던 그 때, 나는 사실 두려웠다. 문화가 해답이 되는 척하는 이 분위기가 행여 사람들에게 깊은 오해나 실망을 불러오진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문화, 문화예술은 아쉽게도 결코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오히려 해결의 과정을 견뎌나가고, 해내게 해주는 근력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빌바오라는 듣도 보도 못한 스페인의 작은 도시에 구겐하임이 세워졌을 때,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역- 작은 마을들은 문화예술, 혹은 특정 취향의 이식이, 흩어져 가는 지역 공동체를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믿음은 문화예술을 항상 취미 내지 복지 정도로 생각해오던 일종의 고정관념을 해체해주는 데에는 분명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문화예술을 통한 부자동네 되기의 희망이라는 묘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wix 제공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wix 제공

마을의 소멸, 지역의 소멸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전반- 생애 주기-을 살아가는 데에, 이 곳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의 그림자이다. 그렇기에 경제적 기반의 부재라든지, 사회적 안전망의 결여라든지 이런 결핍들을 이해하고 정책적으로 채워가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허약한 몸에 강력한 약은 오히려 독인 것처럼, 지역 공동체- 마을-가 구명줄을 실행하기 위해 자신들의 문제를 가감없이 공유하고 토론하며 해결해나갈 힘이 있는가는 또 다른 측면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소멸되는 지역들은 과연 쏟아지는 정책 대안을 지탱할 힘을 가졌는가?

 

문화예술은, 이러한 지역이라는 공간이 물리적 요소에서 유기체로 진화하게 하는 하나의 마법물약과 같다. 지역이라는 공간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유한성을 문화예술을 통해 입체화하고, 무한한 가치로 전환시켜줄 수 있는 매개체이다. 우리가 뜬금없이 지어진 대형 콘서트 홀보다 마을의 오랜 인연을 둔 작가의 미술관에 더 깊은 감동과 연대감을 느끼고 그런 곳에서 일명 지역 브랜딩의 효과를 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역주민을 시민화하고, 지역을 그저 배경이 아닌 삶의 체계를 쌓는 고향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들의 문화예술이 필요하다.

 

20년 전 어느 여름밤 러시아 뻬쩨르부르그의 한 공연장에서 예브게니 키신(Evgeny Kissin)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러시아말을 하나도 모르면서 유학생 친구를 따라 그 이름만 보고 갔었던 공연, 공연장에서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 뿐 아니라, 마치 조금전까지 좌판에서 채소 같은 것을 팔고 있었을 것 같은 몸빼바지에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할머니들, 공연장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사람들이 유서깊은 아름다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좌석 사이를 촘촘히 채우고 키신의 피아노와 함께 백야를 보내고 있던 뻬쩨르부르그 주민들의 그 모습은 서울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생각했던 나에게 이 기이한 관객들은 몹시 낯설지만 친근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문화도시가 문화예술이 주는 것들이 물리적일 것이라고 상상하며 지역소멸을 막아줄 수 있는 대안으로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화도시, 더 나아가 예술과 지역의 만남은 보이는 것 너머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을 버텨주게 하는 물줄기, 토양 만들기에 더 가까운 과정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문화도시를 보는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보다 보기 위한 힘의 필요성. 그것이 예술지리적 관점의 필요성이다.


글: 윤아영(예술지리연구소장, 홍익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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