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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칼럼]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02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1일 전
  • 2분 분량


스토리텔링과 시대정신



사진_wi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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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시대를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의 시대를 우리는 흔히 양가적인 의미를 담아 야만 혹은 첨단 문명의 시대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문명의 시대는 필연적이고 역사적 과업과 기술 개발이 축적된 당연한 결과일 수 있으며, 그 기술 개발을 통해 우리 존재가 고양되는 혁신의 기울기를 자연스럽게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오늘의 시대를 야만의 시대라 부르는 것 또한 주저하지 않는다. 야만의 시대라 함은 우리가 기대했던 기술 개발과 혁신이 인간의 편리성에만 의존한 나머지 그 편리성에 손쉽게 기댈 수 있는 이기적 인식만 양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편리성의 시대에 부합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야만이다.


야만은 양육강식의 질서와 맞닿아 있다. 내가 탐식하기 위해 타자의 것을 탐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것이 실존의 규칙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양가적이라 말했지만, 실존의 속성상 오늘의 시대는 야만의 시대가 조금 더 어울리는 문법이 되어버렸다.


야만이든, 문명의 시대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말할 수 있는 건 단연코 스토리텔링이다. 먼저 우리의 시대를 인식하면서 그렇게 인식하는 것 자체가 필요한 이유가 스토리텔링을 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면서부터 우리 존재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직면하게 되고, 그 직면하는 상황을 통해 우리가 가진 이야기의 새로운 상황, 그 이야기가 가진 내용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그와 함께 시대정신을 스토리텔링으로 말해야 하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당위성과 연결된다.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현재성을 말해주고, 우리가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층위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추출하게 해준다. 결국, 시대정신은 그 시대를 드러내는 일종의 문명과 야만 사이의 융기로 대표될 수 있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결국, 문명의 시대에도 문명과 야만 사이의 틈새, 그 균열을 말하는데 집중한다. 그러면서 야만이 끌어오는 실존의 동력들을 포착하고 그 사이를 연결해주는 촉매제가 되어준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성찰을 시작하게 해준다. 우리의 시대가 적어도 인간적인 길을 걷고 있는지, 도태와 고통 사이에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결국, 스토리텔링은 시대가 변하고 문명의 창궐과 야만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찰이 막연한 방어기제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글 : 주원규 / 문화예술저널 오늘 이사장

평론가, 소설가, 시나리오작가.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열외인종 잔혹사』, 『메이드인 강남』, 『서초동리그』, 『아지트』, 『반인간 선언』 등 120여 작품을 비롯, 평론집 『성역과 바벨』, 『민중도 때론 악할 수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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