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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문화예술, 새로운 시선의 필요성에 대하여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1일 전
  • 2분 분량

예술지리 시리즈 2


“달을 향해 울부짖는 우리들...그들이 우리를 길들이게 내버려두지 않기로 결심하자

(We howl at the moon...Determine not to let them tame us).”

 

내가 콜럼버스의 작은 무대에서 만난 대사였다. 7명의 배우들은 각각 다른 색들이 섞인 바랜 흰머리, 다른 피부색, 느릿하고 불안한 걸음걸이. 크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갈라지고 느린, 그렇지만 왠지 분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그녀들은 대낮의 무대 위에서 셰리주 한 잔씩 마시며 원을 그리고 모여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사진: wix.com 제공
사진: wix.com 제공

그녀들은 그저 지금 여기의 자신을 즐기고 그것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과부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자신이며, 여성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잘 서있지도 못하는 그녀들은 흔히 말하는 전문배우였던 적도, 직업 작가였던 적도 없었다. 속된 말로 영화배우 같은 외모도 전혀 아니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발칙하고 황당한 그녀들 -나의 Howling mothers-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무대 밖에서는 그저 평범한 미국 소도시 할머니들이었던 그녀들은 예술과 노년이 만나는 장면을 새롭게 보여주었다. 노인은 노스텔지어에 젖어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것이라는 착각. 라떼는-에 젖어있는 꼰대들이거나, 혹은 그저 무엇을 보아도 감사할 것이라는 삶에 절여진 지친 몸들일 것이라는 그런 착각들을 아주 격하게 깨부쉈다. 우리는 시공간의 제약이 극대화 되는 것이 노년의 시기라고 믿고 있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 외침처럼, 어쩌면 시공간을 삶의 업력으로 다시 창조해 나가는 시기야 말로 노년이 되는 것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나이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낯선, 그야말로 삶 자체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새해 아침은 언제나 설레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면! 나이듦이 어느새 이렇게 두려운 과정이 되었는지 새삼스럽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5년 이미 초고령사회에 완전히 진입한 대한민국은 고령화와 저출산, 지역소멸 등 어두운 키워드에 이젠 무덤덤해질 정도로 지쳐가고 있다. 대안,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릴 것인가라는 협박 아닌 협박은 사회 전반에 불안이 되어 잔잔히 흐르고 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 또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꿈꿀 수 있을까. 질병과 가난, 죽음을 넘어 다른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을까. 예술지리적 시선의 질문은 여기에 있다. 노년의 너무나 분명한 어두운 측면을 예술을 통해 재정의 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기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부담과 불안 대신 나는 사회적 온기를 가지고 대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생각 가운데에 두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는 삶은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한 것이기에 ‘우아한 노년’ 따위는 어차피 없다. 그래서 나는 creative aging 이라는 말은 여전히 아직 충분히 늙지 않은 이들이 그려가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의 삶의 기쁨이 충분하기를, 그렇기에 나는 노인이라는 말 대신 나이듦으로, 삶의 과정에서 알아채 버린, 신나는 꼼수를 멋대로 즐기는 것- 우리는 그것을 'creative aging in place' 이라고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 예술지리적 상상을 제안해본다.


글: 윤아영(예술지리연구소장, 홍익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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