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지키는 보편성
- Culture Today

-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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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 리뷰

영화 <HOPE>는 호포항 근처 작은 시골 마을에 정체불명의 외계 괴수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여태껏 스크린 속 수많은 미지의 존재와 싸워왔지만, <HOPE> 속에서 목격한 외계인은 가장 완벽하고, 실험적인 대립자로 나타난다.
커다란 몸집, 그럼에도 차와 맞먹는 이동속도,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힘, 그리고 지능과 지성에 이해하기 어려운 신성까지 갖춘 생명체. 보통의 적이 명확한 약점을 가지는 것과 달리, 영화 속 외계인으로 등장한 마베이요와 조르에게선 이렇다 할 약점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꾸준히, 그러나 긍정적으로 진화한 인간의 미래 같기도 하다.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인간보다 성숙한 대화를 나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진행되는 조르와 마베이요의 대화는 영화 내내 등장했던 어떤 인간의 대화보다 훨씬 차분하고 원숙하고, 고층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더없이 우아하다. 칼리를 위한 그들의 싸움은 파괴적이고, 폭력적이었으나 고위층의 신념은 더없이 고귀하게 느껴진다. 극 중 마베이요의 눈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선해서, 싸울 때 그 눈을 볼 수 없는 형태로 변신하는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푸른 눈을 가진 선인의 모습을 유지했다면, 나는 그의 푸른 두 눈앞에서 그들의 싸움을 더없이 숭고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범석이 처음 인간들의 척결대상이었던 바미기르의 눈물에 얼어붙었던 것처럼, 전쟁 내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을 테다. 그런 면에서 이 실험은 성공했다.
극 중 양배는 칼리를 살해하지 않고, 사냥했다. 살해가 아닌 사냥이란 이 엄연한 차이는 ‘의도’에서 기인한다. 양배와 범석이라는 인물에게서 필자는 악의 평범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악이 인간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번져 버린 현상, 칼리가 인간 아이와 흡사한 생김새를 가졌음에도, 양배에게는 칼리를 사냥한 것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 또한 범석은 인간처럼 눈물을 흘리는 바미기르와 혼란스럽게 눈을 맞추고, 이 전쟁의 시작이 인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낙담한 표정으로 어린 칼리를 바라보지만, 마베이요와의 전투를 시작하면서 그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저 마베이요를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전에 느꼈던 혼란은 온데간데없다. 범석은 인간과 외계인이 공유하는 질서를 목격한 유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인물과 다를 바 없이 외계인을 공격하는 데 전혀 거침이 없으며, 외계인을 처치했을 땐 마치 게임에서 승리한 것처럼 기쁨을 만끽하기까지 한다. 조르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괴한 행동이었을까. 하지만 양배와 범석에게 근본적으로 악한 의도는 없다. 악의 평범성에서 기인하는 행동의 결과만이 존재할 뿐이다.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며 근원적인 것들은 흐려지고, 죽지 않으려면 일단 죽이고 봐야 한다는 사실에 오롯이 사로잡힌 것이다. 영화의 환상성이 지키고 섰던 스크린 밖 세상의 현실을 꿰뚫는 지점이다.
영화는 많은 결절점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결절점을 엮어내며 각자의 영화를 완성한다. 어떻게 보면 해석을 관객에게 온전히 맡겨 버리는 참으로 불친절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왕 그럴 거면 처절할 정도로 과감하게 불친절하기로 마음먹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 몇 날 며칠이 가도 상상적 대화 공간이 닫힐 생각을 않는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순수한 창작자로 변모한다. 영화 <HOPE>가 갖는 가장 위대한 장점은, 영화를 본 사람도,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모두 기꺼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 영화를 곱씹을수록, 원작 본연의 맛을 잃어버릴수록 역설적으로 <HOPE>를 더 찾게 될 것이다.
글: 주원규&최서원(객원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