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온 속의 공포, <큐어>가 남긴 질문
- Culture Today

-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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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큐어 리뷰 에세이

영화 <큐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참혹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며 시작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릴러와 공포물이 명확한 악인이나 사이코패스를 대립자로 세워왔다면, <큐어> 속에서 ‘마미야’라는 존재는 그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형태의 존재다. 기억을 잃은 채 정처 없이 방황하는 그는 “당신은 누구냐”라는 단순한 질문만으로 한순간에 타인의 내면을 흔들어버린다. 그가 최면을 걸기 위해 활용하는 사소한 행위들, 일렁이는 라이터 불꽃이나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는 영화 내내 등장했던 그 어떤 물리적 폭력보다 섬뜩하게 다가온다.
보통의 스릴러 속 범인이 명확한 동기와 뚜렷한 악의를 가지는 것과 달리, 영화 속 마미야라는 인물에게선 이렇다 할 범행 목적이나 증오를 찾을 수 없다. 마미야의 최면에 빠져든 이들이 저지르는 살인 역시 분노나 광기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 속 여의사 미야지마는 최면에 노출된 뒤 의학부 시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했던 차별을 떠올리고, 공중화장실에서 낯선 남성의 목을 베어 살해한다. 문명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분노와 폭력 충동을 끊임없이 통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마미야라는 촉매를 만나 그 통제가 풀리는 순간, 망설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도리어 이상할 정도의 평온함을 얻는다. 이렇듯 <큐어>는 평범한 사람과 살인자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성적인 질서를 수호하려 애쓰는 형사 타카베 역시 마미야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는 아내와의 여행을 계획하고, 집을 나선 아내를 온 동네를 헤매며 찾아다닐 만큼 헌신적인 가장의 태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집 안에서 홀로 헛돌며 굉음을 내는 텅 빈 세탁기 소리처럼, 그의 일상에도 피로가 쌓여간다. 아내를 돌보는 일상과 수사 속에서 쌓인 피로는 마미야를 만난 이후로 점차 균열로 이어진다. 타카베는 이성적으로 사건을 추적하지만, 마미야와 대화를 거듭할수록 자신이 억누르고 있던 분노와 마주하게 된다. 결국 그가 낡은 녹음기 앞에 서서 의식처럼 ‘칼로써 치유하라’는 목소리를 마주할 때, 이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피로와 갈등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큐어> 속 최면은 인간이 억누르고 있던 충동을 살인을 통해 ‘해방’시키는 일종의 구원처럼 작동한다. 타카베가 마미야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마침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의 표정에서는 그를 짓누르던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영화는 이 순간을 통해 살인 사건의 종결이 아닌 한 인간에게 일어난 기이한 ‘치유(Cure)’를 보여준다. 내면의 억압된 본성을 밖으로 토해냄으로써 얻는 평온은 결코 정상적인 치유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타카베는 그 순간 가장 편안해 보인다. <큐어>가 남기는 공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억누르며 살아온 감정들이 해소되는 순간, 인간은 정말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글: 주원규 & 김가연(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