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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창(窓):이브의 사과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2025년 12월 13일
  • 2분 분량

고통과 치유, 그리고 존재론적 성찰

   

'이브의 사과'_이미란 작가 제공
'이브의 사과'_이미란 작가 제공

  


‘이브의 사과’는 개인적 고통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이를 통해 인간의 역사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가까운 지인의 성추행 사건과 그로 인해 되살아난 유년 시절 트라우마는, 작품의 표면을 이루는 에덴동산의 평화로운 풍경 아래 깊은 상처와 고통의 서사를 숨겨놓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미학적 대상을 넘어, 고통의 재현과 치유의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하는 철학적 텍스트로 읽힐 수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성폭력의 문제에 대한 근원을 성경 속 에덴동산의 ‘선악과’에서 찾았다. 이는 성경적 서사를 차용하여 인류의 원초적 죄와 고통의 기원을 탐색하는 동시에, 억지로라도 답을 구하며 작품을 완성했다는 작가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이브’라는 인물은 성경 속 최초의 여성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여성을 상징한다. 여기엔 여성의 이름으로 직면한 폭력과 압제적 성적 유린을 겪은 이들의 보편적(?) 경험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이러한 접근은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진리로 확장하는 예술의 사회적 견인력으로 여성들의 연대와 치유를 촉구하는 페미니즘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물감 대신 나무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 에덴동산의 숲을 구현하고, 자개와 레진을 활용하여 빛과 사과에 입체감을 부여했다. 이러한 ‘나무 조각 회화’라는 독특한 기법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관람객의 고정관념을 흔들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재료의 물성적 특성을 넘어, 그 재료들이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 조각들은 마치 깨지고 흩어졌던 상처의 파편들을 다시 모아 붙인 듯한 느낌을 주며, 그 사이로 비치는 자개의 빛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치유의 순간을 상징한다. 특히 따지 말아야 한다고 설정된 ‘레진 사과’는 금단의 열매이자 고통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 고통의 근원을 직시하고 극복해야 할 존재론적 과제를 의미한다.

     

작품의 제작 의도를 모른 채 감상하면 단순히 아름다운 숲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의 상처와 여성에게 씌워진 프레임과 고통이 숨겨져 있다. 마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고백과 맞닿는 지점이다. 이는 삶의 표면적인 아름다움과 내재된 비극을 동시에 담아내는 예술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통 없이 피어나는 꽃은 없다’는 역설적 신념을 통해, 고통의 경험이 단순히 상처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단단하게 밟고 일어설 수 있는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희망을 전달한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에서 고통과 불안을 통해 자신을 초월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어 내겠다는 격렬한 의지이자 다짐이다.

     

결론적으로, ‘이브의 사과’는 개인적 고통을 경험으로 성격적 서사와 접목시켜 보편적인 여성의 고통을 시각화하고, 이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철학적 고뇌의 실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조각 회화’라는 독특한 매체를 통해 고정관념을 깨고, 상처의 파편들을 치유의 서사로 재구성하는 예술의 여정은 비단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뿐만 아니라 구조적 억압과 압제에 놓인 인간에게 고통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성찰적 태도를 반영한다.


글: 이미란 작가

이미란 작가는 자연(생명)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보편적 미학을 넘어서는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관한 경계 너머의 실현을 꿈꾸며 예술가의 삶을 본능적으로 지향해 왔다. 숨어있는 빛 살 한 틈, 그 명멸하거나 포활하는 순간을 표현하는 작가이다.


*화가의 창(窓): 캔버스를 통해 작가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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