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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창(窓): 먼로&테레사, 가치 전복과 미(美)의 재정의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2025년 9월 8일
  • 2분 분량
이미란_먼로
이미란_먼로

‘먼로 & 테레사’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미와 추의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고 존재의 가치를 재 정의하는 철학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이 작품은 ‘오브제가 놓여있는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미술 이론에서 출발하여, 가장 사적인 재료인 머리카락을 통해 가치 전복의 미학을 실현한다. 마치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샘’으로 명명하며 예술의 본질에 도전했던 다다이즘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며, 일상적 오브제를 예술적 맥락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 미술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이 머리에 있을 때와 떨어져 있을 때의 가치 차이에 주목했다. 이는 ‘젊음과 아름다움’의 상징에서 ‘더러움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머리카락의 이중적인 존재론적 위치를 포착한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역이용하여, 모두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잘려진 머리카락을 모아 예술 작품의 재료로 재탄생시킨다. 머리를 감듯 샴푸와 트리트먼트로 머리카락을 씻고, 한 가닥씩 가지런히 펴서 연필심처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수행의 의미를 지닌다. 이 수행의 끝에서 머리카락은 다시금 젊음과 건강함의 상징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되찾고, 나아가 ‘작품’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이처럼 버려진 존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며, 존재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 태도를 드러낸다.


이미란_테레사
이미란_테레사

작품은 외적 아름다움의 화신인 ‘마릴린 먼로’와 내적 아름다움의 표상인 ‘테레사 수녀’를 머리카락으로 그려냄으로써, 관람객들에게 미의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얼핏 보면 정교한 연필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만은 머리카락들이 모여 형태를 완성한 이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그 무엇’의 가치를 관람객과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는 단순히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와 가치를 탐색하려는 중의적 태도와 맞닿아 있으며, ‘아름다움’이 지닌 외형적 가치와 내면적 가치를 동시에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은 또한 미술과 공예, 순수 미술과 키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머리카락이라는 ‘하위 재료’와 ‘수공예’적인 과정을 통해 순수 미술의 엄격한 위계를 무너뜨린다. 이는 예술이 특정 재료나 기법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라우센버그의 선구적 사상과, 모든 것이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현대미술의 개방성을 계승한다. 끊임없이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사고하는 현대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먼로&테레사“는 생명의 순환, 가치의 전복, 그리고 미의 재정의라는 철학적 주제를 머리카락이라는 독특한 매체를 통해 구현해 낸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 너머의 가치를 탐색하고, 고정관념을 깨는 유연한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임을 깨닫게 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것이다.

     

글/작품: 이미란 작가

이미란 작가는 자연(생명)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보편적 미학을 넘어서는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관한 경계 너머의 실현을 꿈꾸며 예술가의 삶을 본능적으로 지향해 왔다. 숨어있는 빛 살 한 틈, 그 명멸하거나 포활하는 순간을 표현하는 작가이다.


*화가의 창(窓): 캔버스를 통해 작가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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