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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창(窓): 숭고의 시간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9월 1일
  • 1분 분량

전순희 작가 캔버스 컬럼


작품이미지_전순희 작가
작품이미지_전순희 작가

<숭고의 시간> 앞에 서면, 우리는 먼저 압도적인 자연의 형상과 마주한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거대한 바위 산은 강렬한 푸른색과 깊은 적색의 파편들로 조각나 있으며,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빛의 조각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역동적으로 꿈틀댄다. 배경의 짙고 어두운 심연은 작품에 장엄함과 무게감을 더하며, 관람자를 일순간 현실 너머의 어떤 원초적인 시공간으로 이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을 넘어, '숭고(Sublime)'라는 미학적 체험의 본질, 즉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거대함 앞에서 느끼는 경외와 전율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선(線) 너머에 보이는 것이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의 '갈라진 틈'은 단순한 흠집이나 상처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쌓아 올린 '축적의 흔적'이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통로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이다. 이 틈들을 '선'으로 그리고, 그 선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면'들을 캔버스 위에 쌓아 올린다. 레너드 코헨의 말을 기억한다. "모든 것 속에는 갈라진 틈이 있고, 그 틈을 통해 빛이 스며든다". 바위의 갈라진 틈새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과 그 안에 내재된 빛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행위는 하이데거가 말한 '함께-속해-있음을, 결합과 연결로서 묶어 매는 행위'와도 맞닿아 있다. 즉,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선'이라는 매개를 통해 연결하는 것이다.


<숭고의 시간>은 결국 '마주 섬'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거대한 자연의 숭고함 앞에 나 자신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격정과 불안을 고스란히 세워 놓는 것이다. 그 치열한 마주섬의 과정을 통해,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고요와 고독'의 시간을 선물하고자 한다. 작품 속 거대한 산은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우리 자신의 내면, 즉 '개개인 자아의 존재'를 만나는 시공간이 된다.

전순희의 <숭고의 시간>은 보이는 물상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을 만나고, 자연의 거대함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게 하는 깊은 울림을 지닌 작품이다. 겹겹이 쌓아 올린 유화의 물감 층은 단순한 색의 집합이 아니라, 자연의 맥박 속에 흐르는 수억 년의 시간과 작가의 내면적 고뇌, 그리고 관람자가 마주할 성찰의 순간들이 응축된 결정체다. 우리는 이 장엄한 푸른빛의 산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삶의 선 너머에 존재하는 더 깊고 본질적인 세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숭고한 시간일 것이다.


글/작품: 전순희 작가


*화가의 창(窓): 캔버스를 통해 작가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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