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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북동부에서 보낸 일요일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8월 21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월 1일


파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부터 파리 도심에서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공식 행사가 열렸다. 전 세계가 중계하는 3주 장거리 도로 사이클 대회다. 프랑스 전역을 달리고 20여 개 구간을 완주한다. 파리가 동선에 들어가면 교통이 크게 조정된다. 나는 사이클에 관심이 없었다. 그 영향으로 타려던 버스가 취소되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20분을 허비하고 우버(Uber)를 불러 파르크 데 뷔트쇼몽(Parc des Buttes-Chaumont)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은 104 센콰트르(104 CENTQUATRE)으로 향하기 전에 북동부의 일상을 몸으로 느껴 보는 것이었다. 예술 단체의 역할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 지역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일요일의 공원은 평화로웠다. 운동하는 사람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호수를 돌고 언덕을 내려왔다. 골목을 걷다 보니 지역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블랑제리(boulangerie)가 보였다. 크루아상(croissant)을 하나 사서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해변처럼 꾸민 운하(canal)도 둘러봤다. 사람은 한 두 명 뿐이었다.유난히 치장된 해변 세트 같았다.바람은 차고 하늘은 회색 빛이었다.


104 센콰트르(104 CENTQUATRE)로 가는 길에 작은 일이 있었다. 내 앞을 걷던 여자 친구 셋에게 한 노숙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고, 말투가 조금 공격적이었다. 곧 내 차례가 오겠다 싶어 나는 먼저 영어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프랑스어를 못해요.” 그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그 틈에 나는 조용히 옆으로 비켜 지나갈 수 있었다. 그 순간, 이곳에서는 긴장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104 센콰트르 / 사진_이보람
104 센콰트르 / 사진_이보람

104 센콰트르는 옛 파리시가 운영하던 장례 서비스 본관이 2008년 부터 열린 문화센터로 변신한 곳이다. 유리와 벽돌, 주철 골조가 만든 큰 실내에 빛이 부드럽게 번졌다. 이날은 공식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래도 한쪽에서 커뮤니티 댄스수업이 보였다. 아이와 어른이 섞여 몸을 풀었다. 공간의 온도가 조금 바뀌었다.


여기는 전시장만이 아니다. 스튜디오를 열어 제작 과정을 시민이 곁에서 보게 한다. 현대미술 전시가 수시로 열리고, 파리의 젊은 층이 도시댄스와 시청각 활동을 즐기러 모인다. 사회·문화 기업 인큐베이팅도 운영한다. 인근의 취약 지역과 연결해 커뮤니티 참여와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꾸준히 돌린다. 베를린의 라디알시스템 V(Radialsystem V), 로마의 조네 아티베(Zone Attive), 마드리드의 마따데로(Matadero Madrid) 같은 산업유산 재생형 문화거점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참 104 센콰트르의 에너지에 젖어있다가 문을나서니, 바로 앞 인도에 노숙인의 생활터전이 이어져 있었다. 방수포와 담요를 겹친 텐트가 가장자리에 줄지어 있었고, 부러진 의자와 여행가방이 보였다. 대비는 분명했고, 거리의 긴장감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바라봄과 피함 사이에서 잠깐 멈칫했다.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의 포우시(POUSH)로 가려고 메트로(Metro) 입구를 찾다가 같은 블록을 몇 번이나 맴돌았다. 나는 원래 길치다. “거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지 말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결국 구글 맵스(Google Maps)를 켜 들고도 입구를 못 찾는 내 모습에 화가 났다. 오래 이어진 여행이 인내심의 끝을 건드렸다. 짜증이 복받쳐 올랐고 눈물이 났다. 내가 뭘 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서,이 길 한복판에서 혼자 이러고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골목을 돌았다. 두세 사람에게 길을 묻고 나서야 눈앞에 있으면서도 몇 번이나 그냥 지나쳤던 작은 입구를 찾았다. 그 역은 리케(Riquet)였다. 문이 옆길 쪽으로 비스듬히 물러나 있어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다.


메트로 7호선을 타고 네 정거장, 약 6분. 오브르빌리에르 판땅 꽈뜨르 쉐맹(Aubervilliers Pantin Quatre Chemins)에서 내렸다. 역을 나서자 오토바이가 빽빽이 오갔다. 아랍계 손님이 주로 보이는 카페, 중국 슈퍼와 식당이 이어졌다. 반쯤 허물어진 건물, 창가를 빨래로 가려 놓은 집들이 곳곳에 보였다. 걸음을 옮길수록 낯섦이 커졌다. 여러 언어와 피부색이 섞인 거리에서 나는덜 외딴 사람 같기도 했다.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고 걷다 보니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갔다. 미사중이었다. 신부와 신자들은 인도계 커뮤니티처럼 보였다. 이제 막 독서가 끝난 듯했다. 언어는 달랐지만 익숙한 예식의 리듬이 금세 나를 진정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하루가너무 짧았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포우시 / 사진_이보람
포우시 / 사진_이보람

포우시(POUSH)는 2022년부터 이곳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에 자리한, 약 270명의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 단지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여름 바캉스 시기라 그런지 건물이 정말 텅 비어 있었다. 바깥에는 설치미술(installation art) 조각들이 무덤 처럼 쌓여 있었고 건물 안 벽면은 그래피티(graffiti)로 채워져 있었다. 순간, 한국 공포영화 ‘여고괴담’의 빈 학교가 떠올랐다. “내가 여기서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 “그런데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와 있는거지?” 아침부터 이어진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늘어졌다.


어디선가 스피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 그 방향으로 갔다. 여자 화장실이 였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름 공포 특집이 이어졌다. 그때 오래된나의 아이폰(iPhone) 배터리가 꺼졌다. 충전할 곳을 찾아 빈 건물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데, 지하에서 발걸음 소리가 올라왔다. 겁과 기대가 뒤섞인 채 큰 소리로 말했다.


“혹시 영어 하세요? 전시 보러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조금 무서웠어요.”

 

자기 스튜디오 에서 작업을 하던 엑토르(Hector)가 다가와 먼저 진정시켜 주었다. “지금은 전시 교체 중이라 당분간 전시가 없어요. 대신 제 스튜디오를 보여 드릴게요.” 그는 사진작가 겸 설치 미술가로 곧 개인전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내가 “노래 나오던 화장실이 너무 무서웠다”고 말하자, 그건 다른 예술가의 설치 작업이라며 작품 의도를 설명해 주겠다며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우리가 화장실 앞에서 한참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물 내리는 소리가 나더니 알렉상드르(Alexandre)가 나타났다. 그를 따라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목탄(charcoal)으로 머리를 길게 내린 여성의 어깨를 그리고 있었고, 팬데믹 시기의 무채색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곧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전시 준비로 바쁘다고도 했다.


포우시 건물은 곳곳이 비어 있었지만, 두 예술가의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발상의 온기와 편안함이 먼저 느껴졌다. 예술가의 작업공간은 공간 자체가 이야기였다. 그 안에서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있고, 그 대화가 작업과 사람을 이어 준다. 바쁜 와중에도 친절히 공간을 열어 준 두 사람이 고마웠다.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분명 힘들었지만, 와 보길 잘했다고생각했다.


엑토르는 평소 이곳이 세대와 국적이 다양한 예술가들로 북적인다고 했다. 입주자들이 모이는 바(bar)와 라운지가 커뮤니티의 허브가 되고, 오픈스튜디오·전시·공연이 정기적으로 바뀐다고도 했다. 내가 내일 호주로 돌아간다고 하니 아쉬워했다. 그리고 9월 말이면 포우시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 건물은 더 이상 임대가 어렵다고 했다. 다행히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옮길 새 건물을 찾았지만, 지금만큼 예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세계에서 손꼽히게 비싼 도시에서 스튜디오 한 칸을 지킨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실감했다.


가장자리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자리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답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오늘, 예술을 통로 삼아 안전과 환대의 감각을 조금씩 배운다. 낯선 길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찾아온 우연한 만남들에 감사하며.




글/사진_이보람

남호주대학(University of South Australia) 예술경영학과 부교수. 2025년 여름, 프랑스 남부의 알레스(Alès), 아를(Arles), 아비뇽(Avignon),그리고 샬롱-쉬르-손(Chalon-sur-Saône)에서 열리는 축제들을 경험했다. 귀국을 하루 앞두고 파리(Paris) 북동부를 찾았다가 한여름 축제의 들뜬 꿈에서 깨어 현실을 마주했고, 축제 바깥에서야 보인 장면들을 품은 채 무거운 마음으로 프랑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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