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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저항: 기억과 마주하다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9월 18일
  • 1분 분량

아트스페이스노 '거기 그저 있음' 전경배작가 전시평론

전시전경_아트스페이스노 제공
전시전경_아트스페이스노 제공

뉴스는 참사의 시간을 재단한다. 참사가 일어나고 남겨진 자들이 슬퍼한다. 희생된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잠시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뉴스가 다시 물결처럼 밀려오면 참사의 시간은 멈춘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오다 영화가 그리는 사건에 얽히게 됐으며 영화가 끝나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영화가 다룰 수 없듯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참사는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일 수 없는 우리 삶에서 참사의 시간은 뉴스가 정한 틀을 넘어 무심하게 흐른다. 전남도청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시간이 흐르고, 세월호에서 친구를 잃은 학생의 시간이 흐르고 삼풍백화점에서, 아내를 잃은 남편의 시간이 흐른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않고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부조리는 괘념치 않은 채 그저 흐른다.

전시전경_아트스페이스노
전시전경_아트스페이스노

작가의 사진은 그 가운데 망각의 시간을 사는 관객을 다시 참사의 공간에 불러 세운다. 그곳에서 호출 당한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참사의 절규와 혼란이 아니다. 참사가 지나간 자리에서, 뉴스가 정한 시간의 틀 밖에서 그저 나의 시간처럼 흐르고 있는 참사의 시간이다. 때로는 참사의 잔인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때로는 참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참사 현장의 ‘지금’을 마주해야 한다. 인물 하나 없는 작가의 사진은 그래서 불편하다. 참사의 ‘지금’을 발견한 관객은 늘 그래왔듯 참사를 다시 손쉽게 ‘과거’라는 주머니에 밀어 넣어두고 잊을 수 없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참사는 지금 어떤 의미인가, 이 끔찍한 일을 비켜 간 후 남겨진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모른 척 피해갈 수 없다. 무고한 시민들이 피를 흘린 뒤에야 당연히 있었어야 할 제도들이 비로소 들어서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망각에 저항하는 작가의 우직한 작업이 반갑다. 참사가 과거에 갇힌 사건이 아니라 계속 ‘지금’으로 반추 될 수 있다면 참사보다 제도가 먼저 들어서는 일이 더 잦아지겠다는 희망을 안아본다.


작품 속 장소: 대구 중앙로역/삼풍백화점/성수대교/진도항/제주 표선리/제주 자리왓/이태원역/무안공항/구전남도청


글: 송환석, 퍼듀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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