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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Talk & Critique] 박유빈 작가2

  •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 22시간 전
  • 3분 분량

물질의 질서에 남은 인간의 기록 - 박유빈의 행위, 흔적, 조각 2


작업과정_사진 박유빈
작업과정_사진 박유빈

Q. 작업에 흙, 불, 나무, 손의 압력, 시간의 흔적 같은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습니다. 특히 도예가인 부모님과 함께 자연 속에서 성장한 경험이 작업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해 오셨는데, 어린 시절의 환경은 지금의 조각적 사고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나요? 특히 재료를 감각하고 다루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A. 도예가는 자연, 특히 불과 나무, 흙의 변화에 감응하며 작업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양평에 작업실과 장작가마를 짓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숲과 강을 뛰어다니며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제 성장 배경이 자연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작동하는 구조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흙이 건조와 수축을 반복하며 형태를 바꾸고 불이 온도와 시간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재료를 통제의 대상이 아닌, 상호작용을 통해 다룰 수 있는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인간의 판단, 신체, 감각, 불완전성은 작가님이 다루는 “시스템” 안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입니다. 시스템이나 구조라는 말은 자칫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질서처럼 읽힐 수 있는데, 작가님은 그 안에서 인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시나요? 인간은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주체인가요, 시스템을 교란하는 변수인가요, 혹은 예측 불가능한 오류에 가까운가요?

A. 저는 인간을 시스템 밖에서 그것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설계하는 절대적인 주체로 보지 않습니다. 인간 또한 자연과 물질처럼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간이 구조를 따르는 수동적인 요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복과 규칙을 통해 구조를 형성하고, 한편으로는 시스템 속에서 신체적 감각과 휴리스틱한 판단과 같은 불완전성을 통해 시스템과 상호작용합니다.

 따라서 저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시스템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과정_사진 박유빈
작업과정_사진 박유빈

Q. 이전 작업 〈From the Trace of Hand〉(2025)에서는 손의 움켜쥠, 주무르기, 점토에 남은 압력의 흔적처럼 조각이 발생하기 전의 원초적인 행위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작가님은 주무르기를 “모든 조각적 행위의 시작”으로 느꼈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주목하는 ‘행위’는 지금의 시스템, 충돌, 균열이라는 관심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A. 이전 작업은 인간의 행위가 물질과 만나며 남긴 흔적을 조각화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시스템은 구조적이고 반복적이며 일정한 규칙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질서입니다. 반면 인간의 행위는 감각, 신체, 순간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하는 휴리스틱적이고 비정형적인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인간의 행위와 물질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흔적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도 인간의 신체와 물질의 저항은 매 순간 다른 결과를 발생시킵니다. 이런 흔적들을 제거하거나 정리하기보다 그것이 드러나는 상태 자체를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제 작업에서 조각은 특정한 형상을 재현하는 오브제가 아니고 인간의 행위가 물질과 만나며 발생한 흔적이 기록된 상태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러한 흔적들을 확대하고 조각화함으로써 구조적 시스템과 인간의 불확실한 감각적 개입이 상호작용하는 과정과 이후 물질 안에 남겨진 인간적인 기록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Q. 그리고 이 작업은 손의 흔적을 스캔하고 프린팅하는 방식으로, 기술 매체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손으로 점토를 주무르는 행위는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반면, 스캔과 프린팅은 그 흔적을 이미지화하고 매개합니다. 이때 작가님이 주목하는 기술 매체는 손의 감각을 보존하는 장치인가요, 혹은 손의 감각을 낯설게 만들고 변형하는 장치인가요?

A. 저는 스캐닝과 3D 프린팅을 손의 감각을 보존하고 규모 있게 확장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행위가 물질에 남긴 흔적을 확대해서 신체적 개입이 가진 물질적 상태를 조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Q. 작업 초기에는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조각이 되기까지의 시간적 행위가 작업의 일부로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조각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행위와, 행위의 결과물로서의 조각을 분리하지 않고자 한다고 언급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최근 작업에서는 이러한 관심이 확장되어, 조각을 완성된 오브제라기보다 반복, 개입, 수정, 실패가 축적되어 남은 상태로서 다루셨는데요.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조각이 ‘완성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시스템이 안정되는 순간인지, 혹은 여러 변수와 충돌이 임시로 멈추는 상태에 가까운지, 그리고 관객이 작업 앞에서 이러한 과정성을 어떻게 감각하기를 바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저에게 조각의 완성은 하나의 최종적인 상태를 의미하기보다 구조적 조건과 인간의 개입이 물질을 통해서 균형을 이루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작업에서 저는 인간의 행위가 물질과 만나며 남긴 흔적에 주목해왔습니다. 손의 압력, 신체적 움직임, 물질의 저항이 만나며 발생하는 변화는 저에게 중요한 조각적 요소였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관심은 완결된 형태보다, 행위와 물질의 관계가 물질 안에 어떻게 기록되는가에 가까웠습니다.

 또한 저는 작업이 관객 앞에 놓인 이후에도 완전히 닫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각은 공간과 관계를 맺고, 관객의 신체적 경험 속에서 다시 읽힐 수 있습니다. 저는 관객이 작업을 완결된 오브제로 보기보다, 구조와 인간의 상호작용이 물질 안에 남긴 임시적 상태로 감각하길 바랍니다.


Q. 조각, 퍼포먼스, 설치, 기술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해오셨습니다. 형식이 확장될수록 조각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느슨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님에게 어떤 조건이 유지되어야 그것을 여전히 ‘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물질성, 신체성, 공간성, 시간성 중 작가님이 가장 놓치고 싶지 않은 요소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작업에서 다루는 시스템은 반복과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인간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다양한 요소로 인해 결과가 항상 달라지며, 이러한 편차는 작업 과정 안에 지속적으로 개입합니다.

 저는 이 차이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신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작업에서 인간의 행위가 물질과 만나며 남긴 흔적을 조각화했던 것도 이런 관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신체성과 흔적에 주목했던 이전의 작업이 최근에는 시스템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도, 제가 주목하는 것은 결국 구조적 조건 안에서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개입하고 변형을 발생시키는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퍼포먼스와 설치 등 작업의 형식이 확장되더라도, 저에게 조각은 여전히 몸을 통해 작동하고 공간 안에서 경험되는 매체이기 때문에 조각이라는 이름이 희석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정미현(독립기획자)

인터뷰이: 박유빈

진행: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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