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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인출하기

작성자 사진: Culture Today
Culture Today
11시간 전
3분 분량

우리는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삭제하는가


프리즈 서울 2026과 키아프 2026이 열리는 9월, 동시대를 관통하는 '선별'의 구조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인출하기》가 열렸다.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HD LAB이 주최하고 2026년 9월 5일부터 27일까지 하나은행 하트원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사회가 끝내 선택하지 않았던 기억과 사물, 그리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각을 다시 현재로 인출한다. 동시대 미술이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바로 이 시기에 '선별'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여 전시의 화두로 삼는다.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선택되듯 사회 역시 기억과 가치, 노동과 감각을 끊임없이 선별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인출하기》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된 존재들을 다시 현재로 인출하며, 선택의 바깥에 남겨진 것들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전시전경(사진제공: 이루리)
전시전경(사진제공: 이루리)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 김이화, 김정은, 남다현, 도이(박민하), 이도소는 을지로라는 장소가 지닌 노동과 소외,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사를 데이터·테크놀로지 기반 매체로 재해석한다.


전시가 열리는 하트원(H.Art1)은 하나은행이 을지로기업센터 지점을 리모델링해 2022년 개관하였으며 개방형 수장고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과거 금융기관이었던 장소는 오늘날 예술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었으며, 금융기관이었던 과거의 기능과 현재 문화예술공간의 역할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개념적 출발점이 된다.

     

은행은 수장과 인출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움직임을 통해 작동한다. 가치있다고 여겨진 것은 안으로 들어와 보관되고, 필요한 순간에만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오랫동안 잠든 채 남고, 어떤 것은 우리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전시는 은행의 '수장과 인출'이라는 구조를 현대 사회에서 기억과 가치가 선택되고 배제되는 메커니즘으로 확장해 바라본다.

     

전시 제목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인출하기》는 양자역학의 사고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착안했다. 관측되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다. 전시는 이 개념을 차용해 사회의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기억과 사물, 감각 역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 가능성을 현재로 다시 인출하며,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왔는지를 질문한다.

     

     

도시는 개발과 재개발을 거치며 수많은 기억을 지워 나가고, 데이터 시스템은 정보를 저장하는 동시에 일부를 노이즈로 분류해 삭제한다. 자본은 노동의 가치를 계산하지만 감각과 경험, 관계는 쉽게 수치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삭제되었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공간에 남고, 기능을 잃은 사물은 다른 형태의 존재를 이어가며,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각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 속에 머문다.

     

다섯 명의 참여 작가는 설치, 미디어, 회화 등 서로 다른 매체와 조형 언어를 통해 도시와 기억, 노동, 사물, 감각에 축적된 흔적을 다시 드러낸다. 김이화 작가는 도시에서 채집한 이미지와 기록, 언어의 파편을 연결하며 사라진 공동체의 기억과 도시의 단면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호출한다. 김정은 작가는 도시의 객관적 데이터와 개인의 경험을 중첩하며 재개발 속에서 지워진 기억을 복원하고, 남다현 작가는 올해 신작을 비롯한 작업을 통해 차용과 패러디를 조형 언어로 활용하며 예술과 가치가 형성되고 유통되는 방식을 탐구한다. 도이(박민하) 작가는 폐기된 전자제품을 해체·재구성해 기능을 잃은 사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한다. 이도소 작가는 시간, 기억, 망각, 존재의 불안정성을 물질과 설치를 통해 붙잡으려는 시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한편 HD LAB은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연구·기획 단체로, 시각예술과 대중을 잇는 '예술 매개자'의 전문화를 목표로 한다. HD LAB은 기존 1,2기 활동인 도슨트 양성 중심의 활동에서 나아가 이번 3기 활동으로 미술계 전문가 초청 강연을 여러 차례 거치며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전시 기획의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는 자체 기획 전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인출하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HD LAB은 지난 3기 활동 기간 동안 전시 장소 물색부터 주제 설정, 작가 섭외 및 선정, 공간 설치, 연계 프로그램 기획까지 전시 기획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특히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가보다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신진 작가들을 직접 찾아 나서며, 하트원이라는 공간이 지닌 금융기관으로서의 역사성과 을지로라는 지역성을 반영할 수 있는 작가를 선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시 운영의 실무 역량을 축적했다.

     

전시는 하트원의 공간 전체를 활용한다. 1층은 전시 및 홍보 공간, 4층은 주전시 공간으로 운영되며, 3층에서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되었다.


9월 5일(토) 오후 2시에는 전시 오프닝 퍼포먼스로 남다현 작가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작가는 제프 쿤스(Jeff Koons)의 대표작 〈Balloon Dog〉를 모티프로 장난감 풍선을 활용한 참여형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퍼포먼스는 예술 작품의 상징성을 일상의 재료와 행위를 통해 새롭게 해석하며, 작품과 소비, 가치의 관계를 관람객의 참여 속에서 유희적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Jeff Koons Special Sale, 오프닝 퍼포먼스 현장(사진제공: 이루리)
Jeff Koons Special Sale, 오프닝 퍼포먼스 현장(사진제공: 이루리)

다섯 명의 작가는 서로 다른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드러내며, 관람객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왔는지, 그리고 어떤 가능성이 아직도 관측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지를 다시 마주하게 한다.

     

HD LAB은 "이번 전시는 사회와 미술계가 반복해 온 '선별'의 구조를 비판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된 존재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다"며 "개방형 수장고인 하트원의 장소성과 프리즈 서울, 키아프 서울이 열리는 9월이라는 시기가 전시를 읽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맥락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개요

전시명: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인출하기 / Cashing Out Schrödinger's Cat

전시 기간: 2026.9.5.(토) ~ 9.27.(일)

전시 장소: 하트원 1,4층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67, 구 하나은행 을지로기업센터 지점)

참여 작가: 김이화, 김정은, 남다현, 도이(박민하), 이도소

관람료 무료


글: 이루리(객원기자/ 홍익대학교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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