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홀로, 그러나 찬란하게: 현대인을 위한 푸른 위로

한은경 개인전, 고래의 궤적을 따라가다
지하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로로 긴 캔버스를 따라 수직으로 몸을 세운 대형 고래가 먼저 시선을 붙든다. 짙은 보라색 바다를 배경으로 한 고래는 벽면을 가득 채우고, 캔버스 바깥으로까지 바다가 번져 나가는 듯해 그림과 공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고래의 궤적으로 깊이가 다른 바다를 그려 낸 한은경 작가의 개인전 《홀로, 그러나 찬란하게: 현대인을 위한 푸른 위로》가 2026년 10월 1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중구 아트스페이스노에서 열린다.

크기와 붓질이 가르는 바다의 깊이
고래가 캔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바다를 다루는 방식도 작품마다 다르다. 입구 작품 옆에는 크기가 확연히 다른 두 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왼쪽의 작은 캔버스는 고래와 주변 벽면을 한눈에 담게 하고, 오른쪽의 큰 그림은 어두운 색채와 거친 붓자국으로 시선을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같은 고래를 그렸어도 규모와 붓질에 따라 그림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는 사뭇 달라진다.
전시 포스터에 쓰인 작품에서는 짙은 어둠 속에 작은 흰 고래 한 마리가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듯 떠 있다. 배경이 어두울수록 흰 형상은 오히려 선명해지고, 캔버스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둠보다 그 안의 작은 형상이 그림의 인상을 좌우한다.
전시기획을 맡은 홍익대학교 주희현교수는 "푸른 심연을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이자 인간이 피할 수 없이 마주하는 ‘광막한 세계’로 읽어낸다. 그 안의 작은 고래는 연결이 넘치는 시대에 오히려 단절감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겹쳐지며 홀로 던져진 존재이기에 삶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얻는다는 관점에서, 고래의 움직임은 표류가 아니라 자기 궤적을 그려 가는 유영이 된다고 설득한다.
화면 밖으로 이어지는 바다
전시장 안쪽으로 갈수록 작은 작품들이 넓은 벽면을 사이에 두고 놓인다. 이곳의 원형 캔버스에서는 일렁이는 파도와 물거품이 고래의 몸 일부를 가리고, 둥근 테두리와 바깥의 빈 벽은 나머지 몸이 그림 너머로 이어진다는 상상을 불러온다. 일부 작품에서 고래는 해수면에 닿을 듯 떠올라 있어, 깊은 바닷속을 그린 앞선 그림들과 다른 분위기를 낸다.

입구의 대형 고래에서 어둠 속의 흰 고래를 지나 수면 가까이 떠오르는 배치는 전시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다. 작품을 차례로 따라가면 깊이가 서로 다른 바다를 지나게 된다.
전시의 마지막 구간에서 고래는 깊은 바다를 벗어나 수면 가까이에 머문다. 고래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그림에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호흡을 위해 수면으로 올라와야 하는 고래의 생태를 떠올리면, 이 장면은 깊이 잠겨 있던 앞선 그림들과 짝을 이루는 쉼의 순간에 가깝다.
심해의 어둠에서 시작한 그림들은 마지막 구간에 이르러 수면의 빛 가까이에서 끝난다. 홀로 유영하는 고래의 궤적은 각자의 속도로 삶을 이어가도 괜찮다는 조용한 위로로도 읽힌다.
전시일정
기간: 2026년 10월 15일(목) ~ 10월 30일(금) 오전11시~오후6시
장소: 아트스페이스노(서울 중구 퇴계로36나길 30 B1)
문의: 02-2666-1253
관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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