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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Today
문화저널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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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번의 실 겹침이 자아낸 침묵의 심연, 그 속에서 고동치는 ‘붉은 숨결’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밀도 높은 정적(靜寂)이 관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거친 질감의 노출 콘크리트 바닥과 대비를 이루는 하얀 화이트큐브의 벽면. 그 위로 일정한 호흡을 가지며 정렬된 검은 사각형의 입체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단출한 나무 벤치 하나만이 놓인 이 미니멀한 공간에서 관객은 시각을 넘어 온몸으로 전해지는 물성의 무게와 마주하게 된다. 《무(無)의 심연, 맥(脈)의 도래: 텅 빈 숨결, 붉은 선의 존재론》이라는 다소 무거운 표제를 내건 이번 전시는 섬유라는 유연하고도 따뜻한 매체가 어떻게 하이퍼 미니멀리즘(Hyper-Minimalism)의 날카로운 정신성과 동양적 사유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풍원곤 섬유회화전시전경:아트스페이스노 제공 무한한 반복의 노동이 도달한 역설, ‘충만한 비어있음’ 풍원곤의 작업은 언뜻 보면 단순한 검은색 릴리프(부조) 회화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작품에 가까이 다가설 때 비
![[Artist Talk & Critique] 이지윤 작가1](https://static.wixstatic.com/media/0bc4c9_4c9c94f474be46639e6b88f2f5452507~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0bc4c9_4c9c94f474be46639e6b88f2f5452507~mv2.webp)
![[Artist Talk & Critique] 이지윤 작가1](https://static.wixstatic.com/media/0bc4c9_4c9c94f474be46639e6b88f2f5452507~mv2.jpg/v1/fill/w_348,h_26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0bc4c9_4c9c94f474be46639e6b88f2f5452507~mv2.webp)
[Artist Talk & Critique] 이지윤 작가1
도시에 남기는 예측 불가능한 전술의 이동궤적 1. The Newly Met World, 2025, 캔버스에 유화, 112.1×162.2cm. 한 사람이 남긴 발자국은 물리적인 이동의 흔적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개인의 역사와 존재 방식을 담지한다. 수많은 움직임이 축적되고 교차하면서 서로 뒤얽힌 걸음걸이의 경로는 이들과 공명해 온 공간의 의미를 다시금 회시한다. 이지윤이 마주한 도시의 지형은 다채로운 요소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의미의 무한한 다원성을 확보한 집합체로 구현된다. 작가는 보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를 감각과 기억이 중첩된 장으로 제시한다. 작가가 그리는 도시는 오늘날의 풍경을 연상시키면서도, 특정한 시간과 장소로 지칭될 수 없는 공간이다. 절제된 구도와 색면으로 동원된 건축물의 골격, 골목을 가로지르는 전신줄은 익숙한 도시의 인상을 환기한다. 여기에 작가는 공간의 편린을 끌어옴으로써 안정된 구조에 균열을 일으킨다. 명료하고
![[연속칼럼]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03](https://static.wixstatic.com/media/11062b_7a259d7962504950a9322b3d1ea2a796~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11062b_7a259d7962504950a9322b3d1ea2a796~mv2.webp)
![[연속칼럼]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03](https://static.wixstatic.com/media/11062b_7a259d7962504950a9322b3d1ea2a796~mv2.jpg/v1/fill/w_348,h_26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11062b_7a259d7962504950a9322b3d1ea2a796~mv2.webp)
[연속칼럼]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03
스토리텔링과 인간 감정 사진_wix.com 감정의 차원은 심리적 고유 영역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슬픔과 기쁨, 희열과 좌절, 체념과 희망 등이 심리적 격동을 느낄때 나타나는 감정의 차원은 인간이 가진 심리적 욕동이나, 조금 더 포괄적으로 확장하면 문화나 특수한 한 개인이 빚어낸 환경의 산물로 이해되는 경향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발화와 지속, 감정의 변이는 심리적 고유 영역의 차원을 넘어서서 스토리텔링의 영역에서 빚어지는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확인은 스토리텔링이 인간 존재에게 어떤 위치와 중요성을 점유하고 있는지 새삼 확인케 해준다. 이를테면 희열의 감정은 어디에서 발화하는가. 뇌과학이나 심리적 세포 분열을 통해 발화되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희열이란 감정이 발화하기 위해선 희열의 감정에 자신을 내어놓거나 그 감정에 흡수되는 존재의 눈뜸과 극적 열림이 가능케 되는 존재의 안팎을
![[영화제]제8회 KCCC 한중문화예술교류원 FILM FESTIVAL](https://static.wixstatic.com/media/0bc4c9_6ecc8f1683f54a1ba9efa562b6ad26a1~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0bc4c9_6ecc8f1683f54a1ba9efa562b6ad26a1~mv2.webp)
![[영화제]제8회 KCCC 한중문화예술교류원 FILM FESTIVAL](https://static.wixstatic.com/media/0bc4c9_6ecc8f1683f54a1ba9efa562b6ad26a1~mv2.jpg/v1/fill/w_348,h_26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0bc4c9_6ecc8f1683f54a1ba9efa562b6ad26a1~mv2.webp)
[영화제]제8회 KCCC 한중문화예술교류원 FILM FESTIVAL
사진 : KCCC 한중문화예술교류원 제공 지난 2026년 5월 7일, 서울영화센터에서 KCCC 한중문화예술교류원의 영화제 「기억과 기록」이 개최되었다. 이번 영화제는 실험·다큐멘터리·AI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홍익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대중문화시나리오학과 학생들의 작품이 함께 상영되었다. 이와 함께 국립현대미술관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 참여작가 조영주의 영상 작품 <Flesh Behind the Curtain>와 장편소설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의 원작자인 주원규 작가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또한 상영 이후에는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작품의 제작 배경과 주제의식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사진출처 : 김해니 조영주는 여성의 삶과 신체를 연구해 온 작가로, 영상 <커튼 속 살>에서는 자궁과 유방을 주제로 총 7개의 장면을 구성했다.
![[연속칼럼]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02](https://static.wixstatic.com/media/nsplsh_9d3042f7e031449eaabdeea7dde30032~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nsplsh_9d3042f7e031449eaabdeea7dde30032~mv2.webp)
![[연속칼럼]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02](https://static.wixstatic.com/media/nsplsh_9d3042f7e031449eaabdeea7dde30032~mv2.jpg/v1/fill/w_348,h_26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nsplsh_9d3042f7e031449eaabdeea7dde30032~mv2.webp)
[연속칼럼]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02
스토리텔링과 시대정신 사진_wix.com 시대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시대를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의 시대를 우리는 흔히 양가적인 의미를 담아 야만 혹은 첨단 문명의 시대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문명의 시대는 필연적이고 역사적 과업과 기술 개발이 축적된 당연한 결과일 수 있으며, 그 기술 개발을 통해 우리 존재가 고양되는 혁신의 기울기를 자연스럽게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오늘의 시대를 야만의 시대라 부르는 것 또한 주저하지 않는다. 야만의 시대라 함은 우리가 기대했던 기술 개발과 혁신이 인간의 편리성에만 의존한 나머지 그 편리성에 손쉽게 기댈 수 있는 이기적 인식만 양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편리성의 시대에 부합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야만이다. 야만은 양육강식의 질서와 맞닿아 있다. 내가 탐식하기 위해 타자의 것을 탐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것이 실존의 규칙처럼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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